“꼭 너 같은 책을 읽는구나!”
초등학교 때 한친구가 집으로 놀러 와서는 우연히 서재에 꽂힌 이방인을 집어 들며 한 말이다.
사실 그땐 “이방인”이란 정확한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 책 표지에 실린 침울한 분위기 속 세상을 초탈한 듯한 뫼르소 모습만 보고 지레짐작을 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이방인” 단어가 익숙해져 가면서 다시 그 책을 읽고 싶었다. 그때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유명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도입부에 완전히 빠져들어 문장 하나하나를 곱 싶으며 읽어 내려갔다. 마치 현장을 보는 듯한 묘사와 주인공의 내면을 간결한 언어로 터치하는 부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해서 사형을 선고받는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게 바로 소설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내가 뫼르소에 대해 느낀 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작가 까뮈 의도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하겠다. 유명한 비평가나 교수들이 방송에서 하는 말들은 천편일률적인 부조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난 이 출발점 자체가 잘 못 되었다고 본다. 그러니 그다음에 볼 것도 없다. 이런 것….비이상적인 객기와 사이코패스적인 엽기적인 인물을 통해 사회 문제를 고발한다는 레퍼토리, 더는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면 슬픔에 잠긴 상주들과 문상객들, 통곡, 숙연한 분위기, 조화, 향냄새, 눈물……. 반면에 뒤를 돌아보면 습관적으로 건배를 건네는 문상객, 소주와 맥주, 형식적인 애도와 인사말, 웃음, 홀가분, 고스톱, 배고픔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상주들… 이들은 부조리한가?
까뮈의 시대는 빈익빈 부익부, 세계대전 등 힘든 시기였다. 소설에 그런 시대 배경을 암시하는 묘사는 없지만,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한 개인이 세상에 대한 배신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는 것을, 삶과 죽음 외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며, 어떻게 해도 이 깊은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 없다는 패배감이 전면에 깔렸음을 느낀다. 아라비아 상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주인공 뫼르소가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강한 감정 표현이자 비웃음이다.
다시 내가 그 소설을 읽었던 시점으로 돌아가면, 퇴사냐 버티기냐의 갈림길에서 헤쳐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시점이었다. 앞에서는 협력을, 돌아서면 책임 전가를 위한 희생양을 찾는 비열한 인간들의 사회였다. 난 한 마리의 연약한 세렁게티의 초식동물이었다. 그래서 난 뫼르소란 인물에 인간적으로 공감했던것 같다. 사형을 구형받았을 때는 일종의 동정심까지 느껴졌다.
뫼르소! 아직도 부조리한 인물로 보이는가? 가식의 탈을 쓴 것은 오히려 당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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