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리뷰

김영의 소설 읽기 - 빛의제국

by 디마드 2020. 9. 28.


빛의 제국? "끈 떨어진 남파간첩의 이야기"


구성이 독특하다. "AM 07:00 ..." 시작해서 "AM 07:00"으로 끝난다. 인기 미드 24가 시분 단위 장면 구성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킨 장면들이 떠올랐다.



대화가 사라진 맞벌이 부부와 자식, 흔한 가족간의 갈등과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러다 가장 기영이 느닷없이 비밀지령을 받는다. 그는 북에서 내려온 고정간첩이었다. 급속히 상황이 반전되며 암담한 주인공 심리묘사가 이어진다.

남북대결 시대에 간첩이란 주요 요인을 암살하고 사회를 전복하려는 공포 그 자체였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예전과는 달리 많이 무덤덤해졌다.

작가 김영하는 여기에 끈 떨어진 간첩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인물로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긴다.

그들은 점조직으로 움직인다. 중간에 누구 한명이라도 잡히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완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한다. 주위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지만, 결국 그들도 생활비와 자녀 학원비를 걱정하는 가장이 되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직업을 구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언제 어떤 지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으니 두려움과 긴장감을 늦출 수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젠 북에서조차 잊힌 인물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면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주인공 기영은 남한에서 대학을 나와 운동권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젠 가정을 꾸려 평범한 직장 생활을 영위하다 어느 날 지령이 떨어진다.

북으로 복귀하라!


10년이나 끈 떨어진 채 살아오다가 뜬금없이 내려온 명령에 갈등한다. 한때 같이 운동권이었던 아내 마리, 자식인 현미 그리고 자본주의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사고방식에 흔들린다.

평범한 도시의 가장은 회사에 출근하여 한 통의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남파간첩 기영이 의심 많은 사무실 직원을 용의주도하게 따돌리는 장면 묘사에 긴장감과 스릴감이 느껴진다.

이 와중에 아내 마리는 20살 연하의 대학생을 만나며 욕구를 푼다. 한 편의 포르노를 보듯 정밀하고 과감하게 묘사한다. 마리는 남편과 딸이 출근과 등교를 한 뒤 태연하게 젊은 애인에게 문자를 보내 점심 약속을 한다. 초반에는 커피숍에서 시작해 와인 삼겹살집을 거쳐 러브호텔로 발전해 나가며 절정에 이른다.

기영이 남북에 대한 가치관의 갈등만큼 마리의 정사가 기다려지는 건 작가의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


김영하는 사소한 사건들을 현실감 있게 구성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강변북로에서 경주마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이나 유키 구라모토와 같은 유명한 음악가나 유명 미술작품 등, 독자의 익숙한 장소와 사물을 직접 인용하여 허구인 소설에 현장감을 부여한다.

아쉽다면 결말이다.

조금은 급조된 느낌. 기승전까지는 잘 왔다가 결말에서는 갑자기 끈이 떨어진 간첩 인양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무엇도 주지 않은 채 그냥 허무하게 끝이 난다.


책장을 덮고 주위를 둘러본다. 지금 한창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 중에 끈 떨어진 불쌍한 인간이 있지는 않을까! 묵묵히 일하고 웬만해선 눈에 띄지 않는 그들은 간첩일까? 끈 떨어진...

반응형

댓글